고양이 양치는 힘들어!!!
전쟁의 서막
꼬부가 저희 집으로 오자마자, 첫날부터 제 무릎 위에서 잠들었다는 자랑질을 여기에다 했었는데요. 서운하게도 첫 날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꼬부와 제가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긴 하지만, 늘 깨볶는 향기를 풍기는 사이는 아니었거든요. 한동안 꼬부와 제 사이에는 살벌한 냉전기류가 흐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발톱깎기나 양치, 목욕과 같은 "하기 싫지만 꼭 해야하는 일들"은 제가 늘 담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맛짱 간식을 준다해도, 꼬부 입장에서 이 모든 게 끔찍하게 싫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을 테니까요 >_<
하지만 꼬부의 건강을 위해서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전쟁같은 일상을 지내고 있었지요. 큰 언니는 '저러다가 꼬부가 스트레스 받아서 오히려 병나면 어째! 그냥 양치 안하고 지내면 안돼?' 라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양치를 중단할 수는 없었어요. 고양이 카페를 들어가보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많은 냥이들이 구내염을 앓고 있어요. 흔하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구내염을 방치하면 큰 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요. 고양이는 스켈링을 해주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상당히 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데다, 일단 구내염이 생기게 되면 치료가 쉽지 않아 심하면 발치까지 해야 합니다.
꼬부는 평소엔 얌전한 아이지만, 자기 몸에 손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등과 이마 정도까지는 쉽게 내주는 편이지만 이빨이나 배 쪽으로 슬쩍 손이 가면 바로 냥냥펀치를 마구 날립니다. 짜증 섞인 냐아아아~ 소리와 함께 말랑한 경고장을 날리는데 그 다음 단계가 되면, 언니고 뭐고 가릴 것 없이 손을 왁! 깨물고는 폴짝 도망갑니다.
입양 초기에 꼬부의 보들보들하고 따끈한 배의 촉감이 너무 좋아서, 겁도 없이 그 애를 번쩍 안아 올렸다가 꼬부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제 손이 쫘악 찢어진 적도 있었는데요. 꼬부도 자기가 한 일에 깜짝 놀랐는지 제가 소리를 친 것도 아니고 혼을 낸 것도 아닌데도 방으로 쌩 도망가더군요. 역시 육식동물의 이빨은 공격에 최적화된 무기였어요. 상처가 다 낫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근육을 끊어 놓은 것처럼 손을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린 통증으로 한참 고생했던 건 덤이었고요. 상처의 아픔보다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너무 속상했어요. 그 공격 장면을 바로 곁에서 목격한 그녀는 아직도 꼬부의 깨물기 공격을 무서워합니다. 덜덜덜.... (차암나! 정작 물렸던 당사자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데... 흐음-_-)
양치질, 시행착오
여하튼 양치를 꼭 시켜야한다고 '책'과 '카페'를 통해 배우고 나서 꼬부 양치는 바로 실전 돌입했습니다. 제 상상 속의 고양이 양치법의 3단계는 - 1단계: 꼬부를 잡는다. 2단계: 칫솔에 치약을 묻힌다. 3단계: 양치를 치카치카 열심히 한다 -였는데, 실전은 전혀 달랐습니다. 고양이 발톱과 이빨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서 운 좋게 칫솔이 꼬부 입 근처까지 간대도, 절대 요놈은 입을 벌려주지 않아요!!! 게다가 고양이의 입은 굉장히 좁고 작은데, 고양이용 칫솔이랍시고 시중에 판매되는 일부 제품들은 헤드 부분이 쓸데없이 너무 커요.
위의 상상 속 1-2-3단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쏟아 부었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금전적인 손해를 다른 분들 만큼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제가 익힌 노하우를 공유해 드립니다. 다만 정답은 없다는 것만 유념하시면서 읽어 주세요. 집사님들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모든 고양이는 제각각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갖고 있으니까요.
1. 준비물 구입하기
반려동물을 위한 치약으로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사용해본 제품은 버박 C.E.T 닭고기맛 치약과 자이목스의 오라틴 메인터넌스 제품입니다. 버박 제품은 오묘한 닭고기 냄새와 끈적끈적한 질감의 제품인데요. 이게 왜 닭고기 향이라는 건지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는 안 갑니다만, 뭔가 비릿한 향기 때문인지 냥이들의 기호성이 좋은 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나트륨 벤조에이트 성분 때문에 논란이 있었는데요. 버박 제품에 함유된 벤조산 나트륨은 일종의 식품 첨가물인데 비타민 C와 결합하면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겁니다. (인간들은 이것보다 훠어얼씬 안 좋은 것들을 먹고 지내지만, 우리 냥이님은 소중하니까요..흠흠흠...) 여하튼 제조사 해명에 따르면 벤조산 나트륨 자체는 승인된 안전한 물질이고 해당 제품은 비타민 C와 함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하네요. 양치를 시켜 보시면 실제로는 굉장히 소량을 사용하게 되긴 합니다만, 제품 선택은 제품 정보를 기반으로 각자가 결정할 문제니까요.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제품은 오라틴 메인터넌스라는 제품인데요. 투명한 젤 타입에 향도 거의 없고 성분상으로도 특별히 문제는 없습니다만, 단점을 굳이 꼽자면 가격이 버박 제품에 비해 높다는 점과 기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양치 초기에 습관을 들일 때엔 버박으로 시작해서 습관이 들고부터는 오라틴 제품으로 갈아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제 치약을 골랐으니, 칫솔을 골라야겠죠? 고양이 칫솔은 손가락에 골무처럼 끼우는 타입, 어금니 칫솔처럼 동그랗고 작은 칫솔모가 있는 타입, 일반 칫솔형 등등 굉장히 다양한 제품들이 있어요. 손가락에 끼우는 타입의 칫솔은 꼬부가 너무 싫어했었고 실제로 어금니 닦기에도 적합하지 않았어요. 건식 사료를 먹는 냥이들은 오독오독 씹어먹다 보면 앞쪽 이빨은 비교적 치석이 덜 생기는 편인데 반해, 어금니 쪽은 음식물이 쌓여서 치석이 잘 생기는 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칫솔질을 해줄 때엔 어금니쪽을 신경써서 닦아줘야 하죠. 그런데 손가락에 끼우는 타입은 어금니 있는 데까지 잘 닿지가 않거든요. 두 번째로 골랐던 칫솔은 반려동물 전용이라는 설명에 혹해서 구입했는데, 헤드 부분이 너무 커서 꼬부가 적응을 못했어요. 굳이 반려동물 용으로 제작된 칫솔이 아니더라도 사람용으로 나온 어금니 칫솔 제품들도 많으니 그걸 쓰셔도 좋을 것 같아요. 써본 제품 중에 추천을 해드리자면 펫투스케어 칫솔은 성인용 어금니 칫솔처럼 생겼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칫솔 머리가 작아서 안쪽 구석구석 닦기에 좋았어요. 그리고 두번째 추천제품은 더블하트의 유아용 칫솔 3단계 칫솔입니다. 칫솔모도 부드럽고 참 잘 닦이는 편인데다 펫투스 칫솔보다 머리가 좀 더 커서 측면으로 잇몸과 이빨을 동시에 닦아 주기에 좋습니다. 큐라덴의 CS1006 제품도 칫솔모가 부드럽고 머리도 작아서 좋다고들 하던데 이건 아직 써보지 못해서 평가하긴 힘들 것 같아요.
2. 이빨 만지기
자, 이제 상상해 봅시다.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언니가 외계어로만 말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기로 해요. 그녀의 모습도 변함없고, 나에게 맛있는 밥도 차려주고, 나와 즐겁게 놀기도 하고, 날 여전히 아껴주는 것 같긴 한데, 이젠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요. 그런 그녀가 뜬금없이 갑자기 내 입을 벌리더니 입 속에 이상하고 큰 막대기를 밀어 넣으려고 합니다. 외계어를 중얼거리면서요. 으아아아아아 >_< 이상한 상상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양치란 위의 과정과 다를게 없다는 겁니다. 갑자기 보호자가 내 입을 벌리고 양치질을 하려고 하는 과정 자체가 위에서 말한 이야기처럼 참 황당하고 짜증나고 무서운 경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바로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의 첫 단계입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과 대의명분을 갖고 있는 행동이라 해도, 우리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동기부여를 해줘야 합니다. 고양이에게 우리의 언어로 우리 행동의 이유나 목적을 설명해줘도 알아 들지 못할 테니, 더 긴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지요. 솔직히 말해, 우리는 위와 같은 실수를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나 직장 생활 등 다양한 지점에서 저지르곤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요.
꼬부에게 양치질을 시키는 방법을 찾으며, 저는 어리석게도 기술적인 측면만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아주 다양한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고 동영상 속의 양치질 자세나 칫솔질 기술을 그대로 적용해기도 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꼬부가 그 집 고양이의 태도와 180도 달랐다는 점입니다. 동영상 속의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얌전히 그냥 집사님의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반해, 꼬부는 아주 소리치고 할퀴고 난리가 났거든요! 처음엔 꼬부에게 양치질 시키는 자세의 문제이거나 칫솔 형태의 문제, 치약 브랜드의 문제, 심지어 꼬부의 민감한(-_-) 성격의 문제 등등 일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보니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게 있었고, "고양이처럼 생각하기"가 빠져 있었다는 겁니다. 꼬부는 나의 의도를 몰랐고, 내 무지막지한 접근이 무서웠을 테니, 그 애 입장에선 당연히 격렬하게 저항하고 빠져 나가려고 안간 힘을 쓴 거였죠. 외계어를 지껄이는 기운 세고 몸집 큰 언니가 무서운 막대기를 입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상황이 꼬맹이 입장에서는 너무 두려웠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자 꼬맹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이젠 접근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잘못된 시작을 바로잡는 것은 처음 제대로 시작하는 것보다 몇 갑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문제를 파악하고서 꼬부의 양치는 즉각 중단했습니다. 일주일간 양치를 시키지 않더라도, 갑자기 꼬부가 구내염을 앓게 되는 건 아닐 테니까요. 열심히 놀아주기만 하고 양치에 대한 나쁜 기억을 잊도록 그냥 칫솔과 치약을 멀리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첫번째 단계로 꼬부를 그냥 무릎 위에 앉히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무릎 위에 잘 앉아 있으면, 그냥 폭풍 칭찬과 함께 맛난 간식 한알을 줍니다. 간식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지는 않았어요. 간식값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한번에 간식을 너무 많이 주면 식사를 통한 균형이 깨질 수 있고 간식의 효과도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꼬부는 똘똘하게도 무릎 위에 앉으면 간식을 받아 먹을 수 있다는 걸 금방 배웠던 것 같아요. 무릎에 앉히는 단계가 충분히 익숙해지고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 갔어요.
두번째 단계가 바로 이빨 만지기 였습니다 무릎 위에 앉은 꼬부의 입을 살짝 벌려서 손에 아무것도 뭍히지 않은 채, 그냥 꼬부 이빨을 살짝 만지고나서 그냥 무조건 폭풍 칭찬과 함께 간식 한 알을 줍니다. 이빨을 만지려 할 때에, 처음엔 양치에 대한 무서운 기억 탓인지 꼬부는 제 손을 물려고 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했는데, 며칠간 계속 반복해 보니 꽤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하루에 너무 긴 시간동안 교육을 해서는 안되고 1~2분 정도로 짧게 하되, 매일 반복한다는 것. 잘 따라 왔을 때엔 폭풍칭찬과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다는 것이였어요. 1회 교육시간이 5분 이상 길어지면 이빨을 만지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 있어요. 이빨 만지기는 늘 긍정적인 연상들 (즐거운 칭찬, 맛난 간식, 즐거운 놀이 등)의 연상고리를 잘 만들어 주세요. 이 단계 역시 꾸준함을 무기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진행하고, 냥이가 익숙해지고나면 다음 단계로 진행합니다.
3. 진짜 양치하기
이빨 만지기를 익숙하게 받아 들이면, 그 다음엔 손가락에 치약을 조금 묻힌 상태에서 이빨을 만져줍니다. 치약 맛을 안 좋아할 수 있으니 이때엔 닭고기맛 같은 기호성이 있는 치약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치약맛에 익숙해지고나서 다음 단계가 바로 칫솔에 치약을 뭍혀 칫솔질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칫솔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쉽게 늘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단계는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때로는 일주일간 아무 문제 없이 양치를 해왔는데, 그 다음날엔 냥이가 으르르르릉 짜증을 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싫어할 때엔 억지로 계속하기 보다는 냥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주시고, 잠시 공백을 둔 다음 낚시대 장난감으로 놀아주다가 다시 시도해 보면 아주 쉽게 받아줄겁니다. 모든 관계에서 그렇듯,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나면 기술적인 측면은 굉장히 쉬워지니까요.
양치질 자세에 대한 동영상들은 유튜브에 찾아 보시면 다양한 집사님들의 영상이 있지만, 그분들의 동영상을 보고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ㅠ_ㅜ 그분들은 정말 신의 경지에 오른 분들입니다. 어쩌면 너무 손쉽게 샤각샤각 이빨을 닦는 모습에 열등감 내지는 열패감을 느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서두르지 마세요. 열매가 충분히 익기 전에 너무 서둘러서 따버리면, 시고 떫은 결과물 밖에는 얻지 못합니다. 한 단계라도 어설프게 하고서 성급하게 다음 단계로 건너 뛰게 되면, 양치를 싫어하는 냥이가 되는 겁니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진행해 주세요.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 냉전의 시간을 잘 버텨준 덕택에 이제 꼬부는 아침마다 양치를 합니다. 제가 워낙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사람이라 다른 건 몰라도 양치질만큼은 거르지 않고 있어요. 참고로, 양치 직후 가급적 30분 내에는 물이나 간식을 주지 않는 편이 치아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양치질 후에 가끔씩 간식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한참 놀아 주기도 합니다. 고생은 내가 했는데, 왜 얘가 칭찬 받고 간식도 먹는걸까요?...난...난......??!!!ㅠ_ㅠ 여하튼 양치를 하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을 꼬부가 앞으로도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꼬부와의 양치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작은 언니의 교묘한 수작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냐하하하하! 코 쓰윽~ 뭔가 완벽하게 바보같은 악당의 음흉한 미소 ^-^)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