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인다는 의미
고양이라는 동물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참 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인 분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놀러 갔다가 그분이 밥 챙겨주는 턱시도 길냥이를 우연히 만났고, 저는 냉큼 제 가방에 있던 간식을 짜잔 하고 꺼냈습니다. 스틱 타입으로 생긴 육포였는데 그걸 내밀자, 녀석이 냠냠찹찹 너무 귀엽게 잘 먹는거에요. 으아>_< 귀여워라!! 우리 꼬부는 캣그라스 이외에 다른 간식을 소화하지 못하는 아이라서, 사료와 함께 사은품으로 오는 냥이용 간식들을 꼬부에겐 못 줍니다. 예전엔 그런 간식을 잘 모아 두었다가 다른 집사님들에게 나눠 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길냥이를 위해 제 가방에 넣어 둡니다. 좋은 집사들과 함께 사는 집냥이들은 맛난 간식들을 먹을 기회가 많겠지만, 길아이들에게는 이게 마지막 간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출퇴근길엔 운전을 하니까 길냥이들과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기회가 없었고 그 카페에서 처음으로 간식 주기를 시도한 셈입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예쁘고 귀엽던지요. 한 개를 맛나게 다 먹고나서 더 달라는 표정으로 지켜보기에 흐뭇하게 하나를 더 꺼내서 그 녀석 앞으로 쓰윽 내밀었습니다. 이번에도 얌전히 잘 먹는가 싶었는데, 이때 갑자기 발톱을 세워서 제 손을 확 할큅니다. 감질나게 조금씩 주지 말고 얼른 가진 거 다 내놧 =ㅁ=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꼬부의 여유있는 동작에만 익숙해졌었기 때문에, 길냥이의 잽싼 움직임을 짐작하지 못했던 저로써는 그냥 어리바리하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생긴 상처라서 그런지 잘 낫지도 않고 상처가 제법 오래갑니다. 별로 아프진 않은데 이 자리엔 아무래도 흉터가 생길 것 같아요. 크흡! =ㅂ=
정말 온전히 순수한 뜻으로 맛있는 걸 주려던 거였는데, 이렇게 상처를 입다니 살짝 억울합니다. 그런데 상처난 손에 밴드를 붙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백번 천 번 잘못한 게 맞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 아이를 평생 반려할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선의에서 나온 행동으로 인해서 만약 그 아이가 잘못된 선입견을 품게 되면 어쩌죠? '사람 손은 가까이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것' 이라든가 '사람 손은 늘 맛난 걸 주는 좋은 것'이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어떻게 하죠? 만약 그렇게 조금씩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던 어느 날, 고양이를 미워하는 누군가가 그 녀석에게 간식을 주는 척 하며 갑자기 해코지를 하면 그때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되나요?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여우와의 일화에서 무언가를 길들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부탁하는 여우에게 어린왕자가 길들인다는 것(apprivoiser)의 의미를 묻습니다.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존재가 된다는 뜻이라고 여우는 설명합니다. 만약 제가 그 길냥이를 단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여 관계를 맺고 집으로 데려가 평생 그 아이와 함께할 각오가 되었다면, 그땐 당연히 길들여도 되겠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어설픈 동정심이 그 아이를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만들 것입니다. 제가 만약 좀 더 세심했다면, 멀찍이 간식을 그냥 무심하게 툭 내려놓고 갔었을 겁니다. 길냥이가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늘 품고 있도록, 혹여라도 길/들/여/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늘 정답일까요? 길들이지만 않으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나요? 솔직히 저는 상처 받는 게 두려워서 누군가를 길들이거나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걸 두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짧은 생을 사는 이 조그만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는다는 것 역시도 두려웠습니다. 평생 해로하는 부부들조차도 죽음의 순간에는 결국 이별하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니,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이별이 가져올 아픔도 없을 거 아녜요. 이런 닫힌 마음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처럼 우리 가족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작은 생명이 내 곁으로 다가왔고, 서로를 보듬어 안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하고, 때론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며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저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결과가 성공 또는 실패를 판가름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일들은 그 과정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린왕자와 이별하게 되는 순간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하는 여우에게 어린왕자는 묻습니다. 애초에 왜 길들여달라고 했냐고, 넌 아무것도 얻은 게 없지 않냐고 어린왕자는 말합니다. 그때 여우는 대답합니다. "얻은 게 있어. 황금빛 밀밭을 보면 네 머리카락이 생각날테니까." 꼬부와 그녀, 우리 셋이 한 가족이 되는 과정들을 직접 겪어보니, 여우의 이 말은 사실이었어요. 길들어가는 시간이 주는 일상의 행복, 영원히 책임지게 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황금빛을 볼 때면 떠올릴 추억이 생긴다는 말의 숨겨진 의미들...
최근에 지인분의 소중한 고양이가 영원한 잠을 자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슬펐습니다. 우리 꼬부 역시 평생 가져가야 할 병을 갖고 있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고, 소중한 가족을 먼 곳으로 보내는 그분들의 심정이 어떨까 싶어 위로의 말조차도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니 고양이별로 떠난 그 아이는 살아있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일생을 보냈고, 이제는 편안하게 온전한 쉼을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애정 속에 평생 행복하게 길들어졌던, 아주 예쁜 목소리를 가졌던 황금빛 고양이를 추모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