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미역국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부모님 생신이면 본가에 가서 밥을 먹곤 하는데, 이때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은 제가 끓이는 미역국과는 맛이 좀 달라요. 미역을 불리는 과정도 같고 소고기를 넣는 것도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이상하게도 엄마의 미역국은 더 보드랍고 깊은 맛이 있습니다.
엄마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엄마의 비밀병기는 다름 아닌 멸치액젓! 아싸~ 나도 이제 미역국 달인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차서 바로 끓여보았지요. 멸치액젓을 조금 넣어서 끓이자 정말 신기하게도 국물 맛이 은근히 깊어졌습니다. 크으으~
하지만 엄마표 미역국의 그 보들보들한 촉감은 안 나옵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큰 솥에서 오래 끓여보라는 두번째 지령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엄마표 미역국에 들어간 미역의 부드러움은 아무리 오래 오래 끓여도 절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 부드러움은 엄마의 '손맛'이나 '미역을 고르는 노하우'의 영역이려니 생각하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다시 아버지 생신이 다가와 부모님 댁에 갔지요.
이번엔 미역국 끓이는 엄마 곁을 지켜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밝혀낸 엄마표 미역국의 비밀은 바로! 불린 미역을 바락바락 한참동안 주무르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처럼 엄마는 미역국 한그릇을 끓일 때에도 미역을 한참동안 주물러 보드랍게 만드는 노력과 뜨거운 쇠고기 양지를 잘게 찢는 정성을, 오이지 무침 하나에도 물기를 제거한 오이지를 또다시 거즈에 똘똘 뭉쳐서 수분을 빼는 시간을, 하찮은 나물무침을 만들 때에도 잎맥 하나 하나의 억센 섬유질을 벗겨내는 수고로움을 당연한 듯 들이고 계셨죠. 이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서 제게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실 정도로요.
평생 엄마의 밥을 그냥 편하게 먹기만 할 때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와보니 굉장한 과정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밋밋한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관심과 정성들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었던 걸까요. 어릴 때 먹던 미역국 한 그릇, 고교시절의 잘 다린 교복, 꼬부와 하는 술래잡기놀이, 그녀와 함께한 지난 주말....
Photo by Jakub Kapusna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