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꼬부

향기 나는 고양이

레즈고홈 2019. 11. 23. 20:02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외출 전에 향수를 뿌릴때면 꼬부 녀석이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곤 이 녀석이 향수 뿌린 곳의 냄새를 킁킁 맡고는, 그 바닥에 자기 몸을 마구 비벼대는 겁니다. 이리뒹굴 저리뒹굴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어떤 특정 성분이 이 향료 속에 있나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향기 목욕을 하고난 꼬부는 섹쉬한 마를린 먼로처럼 샤넬 No.5만 입은 은은한 향기나는 고양이가 되곤 합니다.

 

향료 자체가 별로 고양이 건강에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가급적이면 꼬부가 못 들어오게 하고 화장실에서 얼른 뿌리고 나오는데요. 그래도 별 소용이 없는 게, 고양이의 후각이 사람의 6배이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바닥에 몸을 비비는 이 녀석의 행동이 시작됩니다. 바닥에 온 몸을 한참 비비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루밍이 이어집니다. 몸에도 안 좋을텐데 말이에요.

 

이런 꼬부의 행동이 의아해서 집에 있는 고양이 행동교육과 관련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꼬부의 행동의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루밍은 고양이의 삶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중략) 고양이는 사냥을 마치고 사냥감을 먹어치운 후에도 그루밍을 한다. 사냥감의 냄새를 전부 지우고 털에 붙은 먹이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냄새 흔적을 말끔히 지우면 다른 사냥감이나 포식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다."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팸 존슨 베넷, 2000)

 

책의 이 부분을 읽고서 저는 갑자기 눈물이 터졌습니다. 꼬부는 3.6kg의 그 작은 몸으로 우리 가족을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이 요란한 냄새로 인해 다른 포식자에게 우리가 들킬까봐 이 꼬맹이가 온 몸으로 방어하며 노력하고 있었다니...

 

때로는 우리는 잊고 살아갑니다. 소중한 존재들이 우리를 열심히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요.

 

오늘도 우리 가족은 아주 작은 꼬맹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포식자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